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산맥에 자리 잡은 카슈미르는 ‘서남아시아의 화약고’라고 불린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그동안 카슈미르를 놓고 영토 분쟁을 벌여왔다. 면적은 22만㎢로 한반도와 비슷한 카슈미르는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 북동부 및 중국의 서북부와 접하고 있다. 이곳에는 해발고도 8,000m가 넘는 봉우리가 6개나 있다. 한국 산악인들이 많이 찾는 K-2 봉은 카슈미르 북쪽에 있다. 인구는 파키스탄령 카슈미르는 380만 명, 인도령 카슈미르는 820만 명이다. 인구 대다수는 무슬림(70%)이고 힌두교 신자가 소수다. 히말라야 산맥의 빛나는 만년설 아래 ‘아시아의 알프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름다운 카슈미르에선 피와 눈물이 마를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유혈사태가 계속 발생해왔다.
분쟁의 씨앗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인도 대륙이 1947년 종교(힌두교·이슬람)에 따라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독립하면서 뿌려졌다. 당시 카슈미르는 두 나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무슬림 주민들은 파키스탄에 편입되기를 희망했지만, 힌두교를 믿는 영주 하리 싱이 카슈미르를 인도에 귀속시켰다. 이에 반발한 무슬림 주민들이 같은 해 10월 폭동을 일으켰고, 파키스탄이 지원 병력을 파견하자 싱의 지원 요청으로 인도가 무력 개입하면서 제1차 전쟁이 발발했다. 양국은 1949년 유엔의 중재로 휴전하고 국경선이라고 볼 수 있는 통제선도 획정했다. 당시 유엔은 카슈미르 편입 문제를 주민투표로 결정지을 것을 권고했으나 인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지금까지 영유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분쟁지역이 됐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65년(2차)과 1971년(3차) 전쟁을 두 차례나 더 벌였다. 특히 3차 전쟁 때는 인도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펼치던 동파키스탄을 지원함으로써 양국은 철천지원수가 됐다. 이후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가 됐다. 카슈미르 분쟁은 1989년 이후부터 게릴라전으로 변질됐다. 인도령인 잠무 카슈미르에서 파키스탄 정부의 지원을 받은 분리주의 무장 단체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이에 맞서 인도 정부는 무력으로 이들을 진압하는 일종의 ‘미니 전쟁’이 벌어져 왔다. 분리주의 무장 단체들과 인도 군과의 전투로 지금까지 주민 등 7만여 명이 사망했다. 특히 양국은 그동안 카슈미르 분쟁으로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갈 정도로 대립해 왔다.
핵전쟁을 우려한 미국 등 국제사회가 휴전 중재
양국은 올해 5월 7일부터 10일까지 또다시 사실상 국지전을 벌였다. 직접적인 원인은 4월 22일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 휴양지인 파할감 인근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테러범들은 이 지역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26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쳤다. 희생자 중 24명은 인도 관광객이었고, 나머지는 네팔 국적 외국인과 현지 가이드였다. 사건 발생 후 파키스탄 테러단체 ‘라슈카르 에 타이바(LeT)’의 하부조직이자 현지 반군 단체인 ‘저항전선(TRF)’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라슈카르 에 타이바(LeT)’는 그동안 파키스탄 정부의 비호를 받아왔다. 인도 정부는 테러 사건의 배후에 파키스탄이 있다면서 강력한 대응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테러범과 배후 세력을 체포해 처벌하겠다”라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인도군은 파키스탄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파키스탄군도 이에 맞서 인도에 미사일로 보복했다. 양국 군은 또 국경 지역에서 포격전을 벌였고, 전투기를 동원해 공중전까지 벌였다. 양국 군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서 전면전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나타나자, 핵전쟁을 우려한 미국 등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휴전을 중재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인도와 파키스탄은 각각 17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양국은 일단 모든 군사 행위를 중지하기로 합의했지만, 전쟁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양국이 영토와 종교 때문에 대립하고 있는 데다 물 분쟁까지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파키스탄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인더스강 조약’의 효력 중단을 선언했는데 휴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를 취소하지 않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세계은행의 중재로 1960년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인더스강 지류의 강물을 인도가 막을 수 없도록 하는 ‘인더스강 조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인더스강은 히말라야산맥에서 발원해 카슈미르를 거쳐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길이 2,900㎞의 하천으로 파키스탄의 젖줄이다. 파키스탄은 이 강물에 국내총생산(GDP)의 23%, 노동력의 38%, 농업의 90% 이상을 의존하고 있다. 인더스강 조약에 따르면 인더스강의 수자원을 공동으로 이용하되 인도는 강의 동쪽 통제권을, 파키스탄은 서쪽 통제권을 각각 갖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인도는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인더스강과 지류인 체나브강·젤룸강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반면 인도는 수틀레지강·비아스강·라비강 등 인더스강의 나머지 3개 지류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인도 정부가 인더스강 지류에서 인도 쪽으로 물을 대량으로 끌고 와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물을 대폭 줄이는 사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모디 총리는 인더스강 지류인 체나브강과 젤룸강 등의 수력 발전과 운하 확장 계획 등을 신속하게 실행할 것을 지시했다. 그 내용을 보면 무엇보다 체나부강에 있는 란비르 운하를 현재보다 2배인 120㎞로 늘리는 것이다. 현재 인도는 란비르 운하를 통해 체나브강에서 초당 40㎥ 분량의 물을 공급받고 있지만 운하를 늘릴 경우 초당 150㎥의 물을 받을 수 있다. 인도로 가는 물이 늘어난 만큼 파키스탄으로 가는 물은 줄어들게 된다. 인도 정부는 또 자국령 카슈미르 지역의 수력발전 용량을 현재 3,360MW에서 12,000MW로 4배 가까이 늘릴 계획이다. 체나브강과 젤룸강에 4개의 수력발전 댐을 건설한다는 방침이다. 인도가 이 같은 계획을 실제로 실행할 경우 파키스탄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히말라야산맥에서 발생하는 담수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젖줄
인도와 파키스탄은 히말라야산맥의 적설량 부족에 따른 가뭄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히말라야산맥의 적설량이 최근 들어 최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네팔 카트만두에 있는 통합산악발전국제센터(ICIMOD)는 최근 보고서에서 히말라야산맥 지역에 올해 겨울 강설량이 적었고, 눈이 내린 뒤 지상에 남아 있는 시간이 평년보다 23.6% 줄었다면서 적설량이 2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적설량 감소가 3년 연속 계속돼 인도와 파키스탄 등 이 지역에 거주하는 20억 명이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하천 유량 감소, 지하수 의존도 상승, 가뭄 위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남극과 북극 다음으로 얼음과 눈이 많은 히말라야산맥은 20억 인구에게 중요한 담수 공급원이다. 보고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기후 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예년보다 이른 시기에 찾아온 극심한 폭염에 따른 가뭄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양국 모두 통상적으로 5~6월에 폭염이 절정에 달하지만, 올해는 이례적으로 일찍 더위가 시작돼 이미 4월부터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고 있다. 이 때문에 인도와 파키스탄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들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국제 기후 전문가들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2050년쯤 되면 인간 생존이 어려운 수준의 기온에 도달하는 최초의 국가들이 될 수 있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인도의 의도는 히말라야산맥의 빙하가 급속히 녹고 있는 데다 적설량마저 줄고 있어 앞으로 인더스강이 고갈 위험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운하를 확장하고 댐을 추가로 건설하는 등 수자원 보호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폭염과 가뭄으로 만성적인 물 부족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으로선 인더스강 지류의 물길이 끊어지거나 수량이 대폭 줄어들면 농사에 차질을 겪어 대규모 식량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인도 정부가 인더스강 지류의 강물을 막은 이후 일부 수역 수위가 90% 이상 줄었다고 밝히는 등 인도 정부의 조치를 우려해 왔다. 농업에 기반을 둔 파키스탄에 물 공급 차단은 식량, 민생, 경제 안보를 위협하는 문제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파키스탄은 세계 최악의 ‘물 부족’ 국가 중 하나다. 1947년 1인당 5,600㎥였던 물 공급량이, 현재 1,000㎥ 미만으로 급감했다. 파키스탄은 인도의 의도가 2억 4,000만 명에 달하는 국민의 식수 공급을 끊으려는 의도라고 의심까지 하고 있다.
양국 간 ‘물 전쟁’, 핵전쟁 야기 우려
하지만 인도 정부는 파키스탄 정부가 무장 이슬람 테러 단체들을 계속 지원한다면 인더스강 조약 이행 중단 조치를 취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S.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은 “인더스강 조약은 현재 보류 중”이라며 “파키스탄이 국경 지역에서 테러를 확실하게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종식할 때까지 인더스강 조약은 계속 보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의 입장에선 파키스탄의 약점을 이용해 자국을 공격해 온 친파키스탄 테러 단체를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속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휴전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라면서 “물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 전쟁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키스탄의 입장에서 물 부족 사태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 일각에선 자칫하면 양국의 ‘물싸움’이 핵전쟁을 촉발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의 핵사용 독트린은 특유의 ‘공세적 성격’으로 악명이 높다. 핵무기의 ‘선제 불사용(no-first-use)’ 원칙을 거부하며, 인도가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자국이 선제 핵 공격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4가지 임계치(공간적·군사적·정치적·경제적)를 설정하고 있다. ‘경제 봉쇄나 물 공급 중단·감소’는 경제적 임계치에 해당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양국 간 ‘물 전쟁’은 언제든지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트리거(trigger)’가 될 수 있다. 아무튼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후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무력 충돌 또는 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