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서울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한 ‘한·일·중 정상회담’의 성과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앞으로 후속 조치를 어찌 취하느냐에 따라서 최후의 성패가 좌우될 전망이다.
결국 중국의 리창 총리는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담론만 설파했다.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인 분야에서의 협력만을 강조하는 ‘절름발이식 접근법’으론 과거 시진핑 주석취임 이전의 한·중관계로 회귀하기에는 어렵다는 판단이 든다.
‘중국공산당(CCP)의 진정성’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결정변수로 되어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미·중간의 패권경쟁이 新냉전구도속으로 굳어지고 있는 현실속에서는 더욱더 한·중관계의 다른 변수들이 종속변수로 전락하면서, 변수 외의 비군사적인 분야에서의 협력 고리만 더 강화할 수 있는 한계성을 갖고 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3국이 협력해야 할 사안(事案)들이 복잡해지고 있는 국제정치의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한·일·중의 안보협력 공통 분모를 찾는 모습이 매우 힘들어 보이는 와중에서도 한·중간에는 아직은 협력의 공간이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측면서 많이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양자가 외교 및 통상협력체의 복원을 약속하고 있는 시점 이라는것은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중국경제의 숨통을 조이는 와중에 중국이 불가피하게 우리의 협력을 이끌어 내어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만들어 보려는 속내로 읽혀진다. 동북아 지역에서의 군사충돌 가능성이 커지는 와중에서 기존의 경제협력의 영역을 넘어서는 외교부 차관과 국방부 국장들이 참여하는 『2+2의 외교안보대화』 창설에 합의하는 것은 리스크 관리차원에서 매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2011년에 열리지 않았던 ‘투자협력위원회’까지 장관급으로 재가동한다는 합의는 중국의 대외경제 협력 문제가 매우 절실하다는 것을 반증(反證)한다. 한·중간에 중단간 FTA 2단계 협상 재개도 의미 있는 진전이다. 지난 2016년에 급랭했던 한·중관계의 영향으로 그동안에 한·일·중의 정상회담 개최도 어려웠던 현실을 우리가 보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의 경제패권을 견제하는 現 상황에서는 한계성(限界性)을 많이 갖을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도 보아야 한다.
어렵게 4년 5개 월만에 열린 한·일·중 정상회담의 공동선언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일·중 3국은 ‘3국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가속화’에 공감대를 보이는 등 3국 국민의 생활 수준 및 삶의 질 제고를 위한 경제 협력을 획기적으로 증진하기로 합의했고 ‘경제·민생’ 협력 강화에 주안점을 둔 3국은 ‘6대 분야’에 걸쳐 3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으며 미래지향적인 실질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3국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 “3국의 협력을 통해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 생활 수준과 삶의 질을 향상 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세 나라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실질 협력 방안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고, 3국 정상 간 협의를 통해 경제·통상과 관련한 가능한 모든 합의를 도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3국은 특히 공동선언문에 ‘3국 FTA 협상 가속화에 공감대’라는 합의를 이뤘고, 윤 대통령은 전날에도 한·일, 한·중 정상회의를 열고 상호 경제 협력을 약속한 바 있다.
3국은 향후 10년을 대비한 중·장기적 합의도 내놨는데, 3국은 ‘3국 지식재산 협력 10년 비전에 관한 공동성명’을 부속 문서로 채택, 산업·기술 융합과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예상되는 향후 10년을 대비해 ‘지식재산 창출·활용 촉진 및 보호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더해 ‘미래세대 간 교류’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은 협력의 불씨를 잘 살린 작품이라 여겨진다.
3국은 2030년까지 3국 간 인적 교류 4000만 명 달성을 목표치로 설정했고, 이를 위해 대표적 인적교류 프로그램인 ‘캠퍼스 아시아’(CAMPUS Asia) 사업을 적극 지원하기로 한 것 이외에도 한·일·중 정상은 이번 회의에서 기후변화 대응 협력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 도모, 보건 및 고령화 대응 협력, 과학기술 디지털 전환 협력, 재난 및 안전 협력 등 6대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소지역주의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미래지향적인 협력의 가능성을 얼어 둔 것이다. 국제정치의 파고(波高)는 항상 변하는 현실을 우리는 잘 보아야 한다.
모두에서도 밝혔듯이, 아쉬운 대목은 북·중·러의 군사 카르텔이 심화되는 新냉전구도의 경직성(rigidity)을 반영하듯이 중국이 북 핵 문제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입장을 수용하기에는 매우 힘이 든 상황이다. 한·미·일의 군사협력이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을 기반으로 중국의 군사 이익과 아주 깊게 대척점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결국 북 핵 문제 관련해서는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라는 중국의 외교적 표현에서 그치고 3국이 그 이상의 문구 합의는 못 한 것이다. 우리 정부와 일본의 공동노력에도 불구하고 공동선언문에 『북한 비핵화』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넣지 못한 동북아의 구조적인 3국간의 군사갈등구조와 미·중간의 군사이익 충돌 지점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한반도를 실현한다”는 목표 아래 유엔안보리(UN Security Council) 결의를 충실하게 실행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 전달은 매우 중요한 우리의 중국에 대한 안보외교의 마지노선이다. 북한의 소위 위성 발사는 명백한 안보리 결의 위반이란 명제 위에서 국제사회가 단호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일방적인 입장 표명만으로 그친 것은 부족하지만, 한 편에선 한반도의 분단국가가 진 큰 무게를 잘 반영한 것이다.
일본의 기시다 총리도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안정이 한·일·중 삼국의 이익”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선에서,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을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원론적인 발언을 함으로써 중국과 북한에 대한 견제구를 일방적으로 날린 것이다.
한·일·간의 북한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것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중국의 리창 총리는 “중국은 시종일관 한반도 평화·안정을 유지하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인 해결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면서, 관련 측은 자제를 유지하고 사태가 더 악화되고 복잡해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면서 북한을 일정 부분 두둔하는 외교적 발언을 한 것이다. 리총리가 ‘진정한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실천’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힘에 의해서 한반도의 평화가 유지되는 현실에 대해서 나름의 견제구를 날린 것은 한국 입장에서는 매우 민감하게 해석해야 하는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중국이 꿈꾸는 세계 패권에 대한 정확한 현실 해석을 기반으로 한·일정상은 협력가능한 분야가 무엇이고 협력이 불가능한 분야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명확한 해석을 하고 동북아지역에 짙게 드리운 新냉전질서의 본질(本質)을 잘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이 꿈꾸는 중화사상(中華思想)에 기반한 중국몽(中國夢)은 기본적으로 ‘평등한 주권 국가의 관계’라기 보다는 위계질서에 기반한 속국의 개념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개념이기에 우리는 『한·미·일협력구도』의 틀속에서 그들과의 협력고리를 모색해야한다. 전체주의 국가 중국공산당의 2017년에 표방한 ‘중화민국공동체’에 담긴 사상을 잘 이해하면서 협력할 것을 협력하고 견제할 것은 견제하는 숙련된 동아시아의 3국 외교가 필요한 시점 인것이다.
결론적으로, ‘앙꼬가 빠진 찐빵’처럼 핵심의제는 비켜가면서 동아시아의 인접국가들로서 대화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하고 非정치적인 경제분야에서의 가능한 협력 고리만 확인한 절름발이 정상회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2024년 5월 28일 박태우(한국자유총연맹 자유통일연구원장/국제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