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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우리는 왜 이승만 기념관을 지으려 하는가?

                                  우리는 왜 이승만 기념관을 지으려 하는가?

 

김정민(정치학 박사)

이승만대통령 기념재단 학예연구팀장

 

기념(紀念)이란 뜻깊은 사건이나 역사상 중요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다. 선진국은 국가건립에 혁혁한 공을 세운 주역들과 정치지도자를 기념하는 공간을 만듦으로써 미래세대에 자국의 건립이념을 계승하고 국가 정체성을 견고하게 한다. 공항이나 역, 공원과 학교명에도 건국의 주역들의 이름을 붙여 후대가 일상의 영역에서도 선대의 역사를 친숙하게 느끼도록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이름을 붙여 기념하는 공간이나 기념물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공간의 의인화에 인색한 나라이다 보니 애석하게도 자국을 건립한 초대 대통령의 기념관조차 부재한 실정이다.

 

대한민국 탄생 이후 75년, 우리는 대규모 전쟁을 겪고도 세계사적으로 이례적인 성장과 번영을 이루며 세계 10위의 경제 강국이자 다방면에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 있다. 그런데 나라를 세운 창업(創業)이 없이 어찌 그 나라를 잘 유지하는 수성(守城)이 있겠는가.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다시 기억해야 할 국가의 창업가가 있다. 반만년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민의 나라’를 세우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정치·경제체제를 정착시킴으로써 수성의 기틀을 마련한 정치지도자, 바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다. 우리는 모두 국가의 초석을 놓은 이승만의 유산 위에서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기념공간의 부재 가운데 이승만과 그의 유산이 사장(死藏)되며 대한민국의 건립이념과 정체성도 함께 묻혀버렸다.

 

‘가장 유명하나 완전히 잊혀진 인물’, 이승만

 

대한민국에 모든 대통령의 기념관이 부재한 것은 아니다.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4명의 대통령 기념관은 설립되어 있다. 그러면 왜 아직 초대 대통령의 기념관은 지어지지 못했을까? 그것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연결되어 있다. 2023년 11월 갤럽에서 역대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관한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가장 많은 국민이 공이 많다고 응답한 대통령은 70%를 기록한 노무현 대통령이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전체의 30%만 과보다 공이 많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다만 세대 간 격차가 컸다. 노인 세대와 청장년 세대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지표상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60대 이하에서는 10명 중 2명만 이승만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이승만의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이들의 이승만 인식은 오롯이 교육의 산물이다. 3.15 부정선거와 4.19 등 이승만 대통령의 그림자만 강조된 교과서나 사회적인 반(反)이승만 정서는 청장년 세대의 부정적 인식 형성에 기여했다. 특정 인물에 대한 편향적 교육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이 전체가 아닌 일면만 보게 함으로써 공정한 평가를 저해하는 요소이다. 반(反)이승만 정서에 익숙한 세대의 외면 속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한 사학자의 표현처럼 ‘가장 유명하나 완전히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대표적인 민주공화국 미국에서는 어떻게 초대 대통령을 기념하고 있을까? 얼마 전 조지 워싱턴 기념관이 있는 마운트 버논을 방문했다. 입장료가 무료인 대다수의 미국 국립 박물관들과 달리 마운트 버논은 1인당 28$의 비싼 입장료를 받는다. 뉴욕 양키즈 경기를 일반좌석에서 관람할 수 있는 금액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 대담함은 조지 워싱턴을 향한 미국 국민의 높은 존경과 애정에서 기인한다. 연간 평균 백만 명의 방문객이 마운트 버논을 찾는다.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3개의 창구가 있는 매표소에 줄을 설 정도로 많은 미국 국민이 워싱턴 D.C. 교외 지역에 위치한 워싱턴 기념관을 찾았다. 사실 마운트 버논이 가진 자부심은 이곳이 국가 예산을 전혀 지원받지 않고 오롯이 국민의 손으로 지어졌다는 데 있다. 초대 대통령 기념시설을 건립해 나라의 정체성을 수호하고자 했던 미국인들은 기금을 기꺼이 내놓았다. 1860년 개관 이래 무려 9,600만 명이 마운트 버논을 방문하여 초대 대통령을 기념했다.

미국 버지니아 소재 조지 워싱턴 기념시설 마운트 버논(Mount Vernon)

 

이와 같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기념사업은 직간접적으로 후대 미국인들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대 대통령 선호도를 묻는 질문에 조지 워싱턴은 항상 최상위에 올라 있다. 최근 국립 미국사 박물관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대통령’을 묻는 조사를 진행 중이다. 2023년 12월 현재 110만 명 이상이 참여했는데 3위는 14%가 선택한 오바마였고 2위는 17%의 링컨이었다. 미국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대통령은 역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22%)이었다. 미국의 창업가는 국가가 비약적 발전을 이룬 후에도 잊혀지지 않았다.

워싱턴 기념관에서 유난히 눈길이 가는 한 전시물이 있었다. “워싱턴은 모든 곳에!”라고 쓰여진 문구 밑에 대형 미국 지도가 펼쳐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워싱턴의 명칭이 사용된 공간 및 기념물이 모두 표기되어 있었다. 미국 전역에 500개가 넘었다. 지도 하단의 <워싱턴 기억하기> 팻말에는 이러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워싱턴의 유산은 그의 사후에도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신생국이 성장함에 따라 그의 명성도 높아졌다. 미국인들은 미시시피 강을 넘어 캘리포니아 서쪽 해안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심지어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까지 전진했을 때도, 조지 워싱턴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갔다. 그들은 그곳의 마을과 동네, 산과 강, 병원과 묘지, 학교와 대학에 워싱턴의 이름을 붙였다. 그로 인해 오늘날, 워싱턴의 이름은 미합중국 모든 주에 걸쳐 여전히 살아있다.”

 

초대 대통령 기념관은 상징적 역할을 넘어 역사적 유산을 보전하고 후대에 건국의 이념을 계승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미국에는 있는 기념일이 있다. 매년 2월 세 번째 월요일인 초대 대통령 기념일이다. 미국인들은 이날을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이라고 편히 부르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초대 대통령을 기념하는 날이다. 조지 워싱턴의 생일인 2월 22일을 기억하며 연방 공휴일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해당 주간에 초대 대통령에 관한 특별 교육을 실시하여 미국 건국의 역사를 가르치고 건립 정신을 함양하고 있다. 초대 대통령 기념은 기념관을 중심으로 교육, 문화의 영역에서 자연스레 국민의 삶에 녹여져 있었다.

6.25전쟁 발발 직후 한국의 방어 태세 개선을 위해 방한한 처치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NARA 소장). 6.25전쟁 중 체결된 한미동맹은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자유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자유동맹이었다.

 

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분투, 이승만 기념관 건립

 

해방 이전 이승만 박사가 추구한 불변의 푯대는 ‘독립’이었고, 주권을 되찾은 후 대통령 이승만이 추구한 최고의 가치는 ‘자유’였다. 가장 사랑한 성경구절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 종의 멍에를 지지 말라(갈라디아서 5장 1절)”였다. 세계대전 직후 태생적으로 불안정한 국제적 토양에서 탄생한 대한민국은 곧이어 6.25전쟁을 겪으며 미증유의 국가위기에 봉착했다.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 관념충돌의 전장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강력한 반공국제연대를 도모했다.

1954년 아시아민족반공연맹을 창립하고 두 해 뒤 한국아시아민족반공연맹을 창설했다. 그리고 마침내 1959년 6월 1일 아시아민족반공연맹 제5차 총회를 대한민국 수도에서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이로써 서울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자유의 도시’로 자리매김했고, 연맹은 후일 자유의 가치를 수호하는 국민운동단체 자유총연맹으로 발전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싸움은 곧 국가의 존립과 정체성 보존을 위한 분투였다. 뜻을 같이했던 애국선열들은 연맹을 결성해 분투에 동참했고 그렇게 오늘의 자유대한민국을 만들어냈다. 이제 자유의 후손들의 차례가 왔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은 기념해야 할 우리 역사를 잊어버리는 ‘망각’과 잘못 기억하는 ‘왜곡’의 병폐에 맞서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인 자유의 가치를 보존·계승할 방도이다. 기금 모금을 개시한 지 4개월, 2만 9천여 명의 국민이 79억원을 모아주셨다. 오랜 염원이 이루어져 대한민국 수도에 우뚝 선 초대 대통령 기념관을 실제로 보려면 더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절실하다.

전체주의국가에서의 프로파간다적 기념은 정치지도자의 과(過)를 삭제하고 공(功)을 부풀려 인민의 추앙 내지 숭상을 요구한다. 이와 달리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의 기념은 특정 지도자의 과를 지우려는 노력이 아니라 공과 함께 총체적으로 보려는 노력이다. 과를 통해서는 성찰을 하고 공을 통해서는 긍지를 느끼며 민주공화국의 성장과 발전을 함께 도모해 가는 것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기념관 건립의 목적이다. 오늘날 세계의 이목은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있다. 이 나라의 초대 대통령을 국격에 걸맞게 기념함으로써 세계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증명하고 우리 미래세대에게 애국심과 자긍심을 되찾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