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韓流)의 등장과 의미
한류의 본격 등장은 1991년에 TV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서 방영되면서 비롯됐다. 사회주의적 남녀평등 때문에 여성에게 짓눌려 산다고 느끼는 중국 가장들이 열광하면서 한국 드라마에 대한 선호가 급상승하게 됐고, 그로부터 한류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또 일본에서는 2003년 TV드라마 ‘겨울연가’ 방영 이후 배용준(욘사마) 열풍부터였다. 즉 드라마에서 다정다감한 한국남성상에 반한 일본여성들의 반응으로부터 시작됐다. 이처럼 한류란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에 한국영상 문화와 케이팝이 창조한 인본적 문명의 뉴패러다임’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아무튼 ‘한류’에 대한 세계적인 반응은 폭발적이다. 우리 대중문화가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한국문화에 내재한 보편적인 휴머니즘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지니고 살아온 정의적이고 인본적인 정신과 기운이 대중문화 속에 녹아있기에 물질 만능의 자본주의 경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과 탈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
한류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케이팝의 기원은 노래 부르기를 즐겨온 문화 누림을 통해 우리 내면에 있는 신기(神氣) 또는 흥을 자유롭게 발산함으로써 보편적인 삶의 양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류의 정신적 토대
한류는 한국인이 지니고 살아온 정신이 삶에 발현된 문화 현상으로서 그 사상적 원형은 홍익인간 정신이다. 즉 한류의 본질은 리(理; idea 홍익인간 정신)와 현상(事; fact 신한국문화)이 결합하여 엑스터시(ecstasy 신바람)를 일으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물의 본질과 현상이 하나가 되어 막힘이 없는 상태인 이사무애(理事無碍),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되어 희열과 행복을 느끼는 정물일체(精物一體) 문화조류이다.
한류 팬들이 열광하는 것은 콘텐츠의 질이나 문화적 취향뿐이 아니다. 빠른 경제성장과 고도의 디지털 기술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전파하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 인본적인 호소가 보이지 않는 위로와 희망을 주는 까닭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천지인(天地人) 삼신사상(三神思想)을 갖고 삶을 영위함으로써 하늘과 땅과 사람을 공경하고,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한 삶을 통해 현실과 이상 그리고 자연과 인공을 적절히 안배해 문명창조력을 만들어냈다.
한류는 제2 르네상스
한류는 한민족이 누려온 오랜 문명이 세계사적 흐름과 부합해 태동시킨 것으로서 배경적 차원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요하홍산문명을 토대로 9000년의 장구한 역사가 한류의 소프트웨어를 제공했다. 즉 우리의 독특한 의식주. 춤과 음악, 연극, 회화, 문학, 과학기술, 산업기술 등이 바탕이 됐고, 1980년대 이후 대중문화의 왕성한 실험정신과 젊은이들의 상상력, 창의력, 감성의 발현이 어우러져 발생하였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의 문화융합, 실험 및 창조력이 한류의 큰 요인이다.
둘째, 우리는 60년 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세계 최빈국에서 10위권의 국력을 만들었다. 그에 더해 뛰어난 기술력, 스포츠 분야에서 세계 7위권, 세계 최고의 교육열 및 정보화 수준은 국민의 자신감을 키워줬다. 아울러 2000년대 이후 고속으로 다가온 디지털 문명이 한류의 배경이 된다.
셋째, 1990년대 말부터 20여 년간 IMF구제금융과 금융위기, 코로나 질병을 이겨낸 자신감, 젊은이들의 변화와 도전을 통한 신영역 개척의지가 ‘역동사회’를 만들어줬다. 아울러 지식정보 기술사회의 숨 막히는 경쟁에서 벗어나려는 인간 본연의 욕구 분출도 신문명의 촉발에 큰 요인이 됐다.
넷째, 서구 자본주의가 자본(capital)만 있고, 근면과 절약, 청렴과 정직, 신용을 특징으로 하는 주의(ism)가 실종된 상태여서 비인간화와 물질 만능, 도덕의 붕괴, 이기주의 팽배, 공동체 의식 박약, 반인륜적 범죄의 창궐이 인류의 과제로 등장했다. 즉 서구 물질문명의 타락과 한계가 신문명의 출현을 고대하던 차에 한류가 등장함으로써 세계인들이 인본주의의 원형을 발견하고 누리게 된 것이다.
또한 한류는 한국의 역사 전통과 문화에서 우러난 인본적인 문화로서 세계문화 발전을 자극하고 우리의 국격과 국력을 높여주는 제2의 르네상스로 떠올랐다.
제1 르네상스는 14세기경, 중국문명이 유럽에 전해져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중세문명이 재생해 뒤에 산업혁명의 동인이 됐다. 이른바 동양 문화의 수출이었다.
지금 한류는 인류사에 제2의 르네상스로 평가받고 있다. 즉 한계에 이른 서구의 이념과 삶에 신선한 충격을 주어 인류사 발전에 기여하고, 국가경쟁력과 국격을 높여주고 있다. 나아가 연간 100조 원에 달하는 문화 수출로 국부 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외교·경제·문화적인 효과를 고려한다면 한류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효자산업이다.
한류의 내용
한류는 한국문화의 전통주의, 한민족 특유의 해학과 낙관주의, 미래 개척의 역동성, 그리고 현대 디지털 문명의 융합을 통해 얻어낸 문화창조 형태로서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혼(魂, spirit)이다. 한류는 한민족이 지니고 살아온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접화군생(接化群生)의 정신을 인류에 확산시켜 인류행복에 기여하고, 삶의 보편적 이치로 세상을 교화하여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며, 나로 인해 뭇사람과 사물이 생기를 얻는 것을 그 이상으로 한다. 즉 천지인이 하나가 되는 신인합일(神人合一) 문화를 펴고, 뭇 생명의 삶이 절정의 희열(ecstasy) 속에서 영위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흥(興, fun, 신명, 신바람)은 춤과 노래를 즐겨온 우리 민족의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중 전국에 4만5000개나 되는 노래방이 음악의 생활화를 증명해주고 있다. 한국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은 1위 케이팝, 2위 정보통신 기술과 제품이다. 그만큼 한국 대중음악은 한류의 핵심이 된다.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BTS의 춤과 노래는 매우 세련되고, 정교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극도로 활력있는 종합예술이자 현대 한국문화의 전형이다. 아울러 TV드라마, 영화, 연극, 각종 춤, 발레, 뮤지컬, 예능프로, 댄스, 국악, 전통 민속놀이, 인터넷게임, 웹툰 등도 이에 포함된다.
셋째, 멋(美, elegance)이다. 한민족이 지닌 멋은 자연친화와 인본주의를 양 축으로 하고 실용성과 예술성이 가미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한복의 우아함은 세계에서 독보적이다. 그리고 패션, 다자인, 화장품, 의료, 회화, 조각, 문학, 보석, 도자기, 염색기술 등이 뛰어나다. 이 중에서 화장품 수출로 3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한해에 외국인이 한국에서 성형외과와 피부과 치료를 받은 숫자가 5만 명이고, 그 치료비가 2150억 원에 달한다. 이른바 메디컬 한류가 본격화한 것이다.
넷째, 맛(味,taste)으로 우리의 고유한 음식(K-food)을 들 수 있다. 한국의 세계적인 음식으로는 불고기, 비빔밥, 김치, 김치찌개, 고추장, 김밥, 떡볶이, 떡, 라면, 한과, 전(煎), 순대. 돼지족발, 삼계탕, 치맥, 꼬리곰탕, 잡채, 누룽지, 소주, 막걸리 등이 있고, 건강 보약으로 인삼제품과 죽염제품, 흑염소 중탕 등이 있다.
다섯째, 창(創,creativity)이다. 한류는 그 자체에 창조성과 고유한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다. 지금도 한류는 끊임없이 진화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 어디까지 진보할 것인지, 필자는 한국주의(Koreanism)로 정착될 때까지 발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류의 미래비전
한류는 한민족의 미래 개척에 매우 요긴한 수단이요 산업으로서 비전을 정리해 보면 이래와 같다.
첫째, 세계 역사상 제2의 르네상스를 선도하는 문화로서 4차 산업(AI)과 IT와의 공존으로 신신업분야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한류 문명이 세계문화의 공통분모로 자리 잡아 세계평화와 인류화합에 기여할 것이다.
셋째, 아프리카-중동-유럽-인도와 동남아-중국, 일본-북미 중미 남미를 잇는 M자형의 ‘동이(東夷) 문화벨트’가 확산되어 국제적인 결속을 강화할 것이다.
넷째, 상품과 문화를 결합하는 신산업 조류의 발전을 선도하며, 인간 삶의 전 영역에서 한류를 활용하기 위해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러한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최대의 무형자원인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여 그 안에서 콘텐츠를 찾아내는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한류 문화는 개인과 조직의 새로운 힐빙(Heal-Being)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문화는 국경이 없으므로 한류의 확산이 경직된 북한체제의 이완과 인권 신장, 민족통일과 민족문화 창달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노희상 작가 (문학사랑신문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