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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의 역사적 교훈을 생각해 본다.

 

                                                                                                               

지난 수 개 월 동안 인기있었던 주말의 사극중 하나인 『고려-거란전쟁』이 어제 마지막 회를 방영하면서 모처럼 국민들에게 깊이 있는 역사해석을 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태조 왕건이 건국한 고려가 한 세기가 가기 전부터 거란의 침입으로 왕조국가가 소멸될 위기에 처했을 때에 자기희생적인 현명한 군주와 지혜로운 관료, 그리고 백성들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서 국가멸망의 위기(危機)를 극복한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큰 교훈이다. 한 나라의 건강성을 측정할 때에 최고지도자의 지도력, 관료와 정치지도층의 국가에 대한 헌신성, 그리고 일반국민들의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忠誠心)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읽는 계기가 된 것이다.

 

『고려-거란 전쟁』은 993년부터 1019년에 걸치어 고려와 거란의 요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당시 고려사회에 정치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전쟁이다. 993년 성종 12년에 소손녕의 침입을 시작으로, 현종1년인 1010년 요나라의 성종이 직접 군대를 몰고 왔으며. 마지막으로 제3차시기인 1018년 12월에는 소배압이란 장수가 침입을 하면서 고려의 국토가 많이 유린당하고 백성들도 도탄에 빠지는 환난의 역사를 겪은 것이다. 마지막 거란군의 침입을 맞았을 때에 고려의 20만 대군이 거란의 10만 대군을 격파하지 못했다면 고려는 거란의 속국으로 고달픈 역사를 다시 썼을 것이다.

 

고려 건국당시 지금의 몽골과 만주지방에는 거란족과 여진족이 유목생활을 하고 있다가, 916년 요나라로 거란족이 여러 부족의 통일을 이룬 이후, 세력 확장이 매우 가파르게 진행되었다. 요나라가 발해를 멸망시킨 이후로는 고려가 요나라와 적대적인 관계를 갖으면서 고려의 북진정책과 부딪치며 거란이 고려침략의 역사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동아시아의 판(板)이 다시 짜이는 시점에 부상하는 중원의 두 패권국가인 송나라와 요나라사이에서 균형 잡힌 중립외교로 150년간의 평화가 지속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결국 요나라가 멸망한 1125년까지 양국 간에는 많은 무역이 시행되었으며, 불교를 숭상하는 요나라의 불교문화가 고려로 유입되어 의천의 속장경 간행에 영향도 주고 반대로 원효대사의 ‘기신론소’가 거란에 전해지어 양국 간의 불교문화가 활발하게 교류되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에 고려의 현종과 충신 강감찬이 거란의 소배압 10만 대군을 3차 침입전쟁에서 격파하지 못했다면, 고려는 거란의 속국으로 전략하여 결국은 거란이 송나라를 멸망시키는 일에 군사력을 동원해주는 전쟁의 역사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오늘 필자의 칼럼을 통하여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한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결정되는 주요 변수 중 에서도 세 가지가 유독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기 위해서다.

 

고려조에 성종을 이은 현종의 리더십이 순간순간 위기를 돌파할 때에 현명한 결정으로 위험변수가 줄어들고 국민을 통합하는 리더십이 만들어져서 고려를 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좋은 인재를 발탁하여 위기 시에 활용하는 능력도 지도자의 필수 조건중의 하나이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또 무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감찬이란 문신을 발탁하여 전쟁의 전략·전술을 지휘하게 만든 현종의 결단도 매우 돋보이는 대목이다. 한 순간의 용인술이 고려군 20만의 생사를 가르고 고려의 국운을 결정짓는 변수로 작용한 것이다. 당시 고령의 강감찬을 군부 최고사령관인 상원수(上元帥)로 임명한 현종의 용인술이 매우 중요한 전쟁승리의 요인(要因)이라 할 것이다.

 

나라가 위기 시에는 백성들이 지도자를 믿고 따르게 하는 국가원수의 솔선수범하는 감동의 리더십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변수로 작용한다는 평범한 깨달음도 하게 된 것이다.

 

1000년 전의 전쟁사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 분단국가 한반도는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가 있을까?

 

정지(正知), 정판(正判), 정행(正行)의 돌파구를 여는 탁월한 안목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리더십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지도자라면 능히, 대한민국의 사명인 자유통일을 이루는 길목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항상 최고 권력자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정말로 중요한 자리에 중요한 직책을 맡기는 용인술이 강감찬과 같은 인재를 발굴·등용하는 일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자리에는 거기에 맡은 인재를 탕평(蕩平)으로 등용하여 국민과 공복(公僕)들의 신뢰를 얻으면서 국가적인 에너지는 상승하게 된다.

 

지금처럼, 한반도가 처한 대 전환의 시대에는 국민들이 믿고 선택한 국민의 대표자들은 공명정대(公明正大)한 객관성으로 중요한 자리에 합당한 인재를 발굴하여 등용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책무(責務)중의 하나일 것이다.

 

역사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지켜보면서 필자가 느낀 소회를 이렇게 적어보았다.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유통일로 분단을 극복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책무를 완수하는 일에 좋은 정치지도자, 좋은 참모들, 좋은 국민들이 삼합(三合)하여 분단(分斷)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것이다.

 

2024,3.12일 박태우(자유통일연구원장/국제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