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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NK' 對 자유세계, 신냉전과 한반도 안보

 

 

 

이지용

계명대 교수

 

세계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언 3년을 넘기면서도 종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대립과 충돌이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시리아 아사드 정권 축출, 홍해 위기로 분출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침략한다고 공언하면서 긴장을 상승시키고 있고, 북한은 핵위협과 함께 최신무기를 선보이며 대한민국에 대한 위협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은 하이브리드전으로 러시아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중동에서는 이란과 후티반군을 돕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으로 곤경에 처한 러시아 푸틴은 중국의 시진핑을 초청해 최고수준의 우의를 과시하고 있다.

이들을 국제자유질서를 위협하는 ‘CRINK(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CRINK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 미국은 반(反)자유세력의 핵심인 중국을 억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 관세전쟁의 주요 배경이다. 격동치는 국제정세, 대한민국 안보에 어떠한 시사점을 주고 있는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제정세 격변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거시적 차원에서 신냉전 구도의 성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냉전 구도는 국제 자유질서에 도전하는 CRINK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 간의 대립 구도를 의미한다. 1990년대 초 구(舊) 사회주의권 붕괴로 맞이하게 된 탈냉전 세계화 시대가 진행된 지 약 30여 년만의 변화이다. 신냉전이 과거 냉전과 다른 점은 반(反)자유진영의 핵심이 구(舊)소련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일당독재체제의 중국은 개혁개방 40여 년간 미국과의 공존과 경제협력을 통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중국공산당은 성장한 국력을 바탕으로 중화민족주의의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른바 신(新)중화질서로 국제정치경제 질서를 중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한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가 러시아 민족주의로 재무장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세계화 시기에 형성된 유럽의 질서를 깨뜨리고 있다. 이들과 국제자유질서 재편에 이해를 같이 하는 이란이 중동사태를 촉발시키고 있고, 북한은 핵무장을 본격화하고 신무기로 재무장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국제지정학의 본격적 부활이다. 국제지정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대만과 동·남지나해, 북한과 한반도 사안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신냉전의 두 번째 성격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1972년 ‘미중 데탕트’ 이후 약 반세기 간 추진해 온 ‘미중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정책을 폐기했다. 반세기 만에 미국의 중국정책이 대전환을 이룬 것이다. 중국을 국제자유시장 질서에 편입시키면 중국공산당 체제가 스스로 변화하거나 최소한 국제정치경제 질서에 위협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환상이었음을 자각한 것이다. 더욱이 중국이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미국과 아메리카 대륙을 잠식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강한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대중(對中) 위기의식은 단순히 트럼프 행정부만의 문제의식이 아니다. 공화당, 민주당, 군부 및 정보 부처, 학계 및 전문가 그룹, 종교계 등 전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미국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초당적으로 ‘현존위협대응위원회:중국(Committee on the Present Danger: China)’을 조직한 것이다.

미국의 지도자들이 ‘현존위협대응위원회’를 조직한 것은 미국 건국 이후 이번이 4번째이다. 그리고 그 위협에 특정 국가명이 들어간 것은 이번이 최초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미국의 대중 강경정책이 단순히 트럼프 행정부만의 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향후 미국은 중국의 위협을 억지 및 제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대중 강경책을 초당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미국의 세계전략은 중국위협 억지 및 제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신냉전 구도와 함께 국제지정학 및 국제지경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신냉전이 과거 냉전과 다른 세 번째 차이점은 지난 30여 년간 진행되어 온 세계화와 ICT 정보통신혁명과 연관되어 있다. 세계화 이후 공산당 전체주의 중국은 자유세계와 경제적, 사회적으로 긴밀히 연동되어 왔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한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 형성되었다. 경제적 교류협력은 사회정치적 교류협력의 폭과 깊이를 확대심화시켰다. 이와 같이 경제, 사회, 산업생산, 과학기술 등에 있어 상호의존이 깊숙이 진행되어 온 상태에서 상호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ICT 정보통신 혁명과 맞물리면서 상호의존성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진전되었다. 이는 그만큼 대립과 갈등의 비용이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중갈등 심화와 신냉전 형성과 같이 국제정치 구도 변동기는 국제지정학과 국제지경학을 역동적으로 변동시킨다. 과거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구도가 형성되던 시기 치솟던 국제정치 긴장도 에너지는 동아시아에서 한반도로 분출되었다. 이것이 6·25 한국전쟁의 국제정치적 배경이었다. 동시에 전후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고 미일동맹을 바탕으로 전후 재건을 달성하고, 한국이 동아시아 경제기적을 만들어내는 국제지경학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미소 대립이 격화되던 배경에서 단행된 1972년 미중 데탕트는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이익계산 공식을 바꾸어 놓았다. 그 결과 공산권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선에 놓여있던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하락했다. 이후 한국은 주한미군 철수와 국제오일쇼크, 북한의 대남도발 등으로 체제가 위협당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국은 이 위기를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체제위기 상황을 극복하는데 성공했다. 한국은 ‘한강의 기적’과 이후 민주화를 이루어 내고, 이 기반을 바탕으로 탈냉전 시기를 맞이해 중국, 러시와의 수교와 경제교류를 본격화 시켰다. 이로부터 우리는 국제정치 구도의 격변기는 위기와 함께 기회요인을 발생시킨다는 교훈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위기요인을 최소화하고 기회요인을 포착해 실현시키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중국정책 대전환과 신냉전의 새로운 국제구도에서 우리는 위기요인과 기회요인을 정확히 식별해 낼 필요가 있다. 먼저 위기요인이다. 현재 가장 큰 위기요인은 미중갈등 심화와 신냉전이 축적해 가고 있는 군사안보 긴장도이다. 이러한 국제적 긴장도는 반드시 어느 방향으로든 분출된다. 과거의 역사적 경험은 점증하는 갈등의 에너지는 ‘약한고리’로 분출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홍수로 싸이는 수력 에너지가 댐을 압박할 때, 가장 약한 부분으로 에너지가 집중되어 댐을 붕괴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그 에너지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분출되고 있고, 동아시아에서는 대만과 한반도로 집중되고 있다.

 

<사진설명> 국방부는 지난 4월 15일 미국 B-1B 전략폭격기가 전개한 가운데 한미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우리 공군의 F-35A, F-16, 미국의 F-16 전투기 등이 훈련하는 모습.

 

군사안보 위기요인은 대한민국에 엄중한 과제를 던져 주고 있다. 자칫 제2의 한국전쟁 참화를 겪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위기요인이 한반도를 덮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절대로 ‘약한고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약한고리’가 되는 요인에는 대내적 요인과 대외적 요인이 있다. 대외 요인으로는 갈등하는 강대국 사이에서 ‘모호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이를 현대 한국외교전략 용어로는 ‘전략적 모호성,’ ‘균형,’ ‘줄타기’ 등으로 표현한다. 강대국 간에 갈등이 첨예화되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우리와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와의 동맹결속력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과 자유의 ‘가치’와 자유질서에 대한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한미동맹을 맺고 있다. 즉, 현 상황과 조건에서는 미국과의 동맹 결속력을 최고 수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그래야 중국, 북한, 러시아가 한국에 대해 오판을 하지 못한다. 동시에 한미동맹이 군사안보적으로 그 기능을 발휘하기 위한 조건인 한미일 안보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더 나아가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등 인도태평양 지역 자유진영 대표 국가들과의 안보연대를 더욱 긴밀하게 묶는 외교전략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국내정치 안정이다. 위기의 시기에는 국내 정치사회 단결과 단결된 안보의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위기요인은 반드시 기회요인을 함께 발생시킨다. 현 상황에서의 위기요인과 기회요인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전략적 디커플링(Strategic Decoupling)’ 전략이다. 이는 전략적 계산 하에 점진적이고도 효과적인,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미국의 대중(對中) 전략적 디커플링은 단기적으로 한국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한국경제는 중국에서 생산하고 미국으로 수출하는 구조를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의 대미 수출이 감소하고 경제가 위축되면, 한국의 대중 중간재, 자본재, 기술재 수출도 동시에 줄어들 것이다. 경제적으로 단기적 위협요인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한국경제에 매우 큰 기회요인을 제공해 준다. 한국과 중국은 주력 신성장 동력 산업이 겹치고 있다. 그런데 반도체, 2차전지, 양자컴퓨터, AI, 조선, 전기차, 의약생명산업, 원자력, 석유화학 등 미래 한국경제의 먹거리인 신성장 동력산업에서 미국은 중국을 배제해 나갈 것이다. 중국배제의 효과적 대안은 한미동맹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산업기반과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이다. 또한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하면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한국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대상은 전 세계에 걸쳐있고, 그 영향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한미동맹에 대한 포지션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러한 기회요인은 얼마든지 실현시킬 수가 있다.

끝으로 미국의 중국전략 대전환은 미국의 동아시아 지정학 이해공식을 변화시켰다. 중국을 우선순위로 놓았을 때는 ‘한반도 현상유지’가 상수로 설정된다. 하지만 ‘한반도 현상유지’가 더 이상 상수로 설정되지 않을 수 있음을 뜻한다. 이는 한반도 자유통일에 대한 지정학적 기회의 창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현재 우리는 이와 같이 변동되고 있는 국제구도를 자유통일 한반도를 비롯해 대한민국 제2의 도약의 발판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