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성지에서 울린 ‘지식 나눔’의 서곡(序曲) - 한국자유총연맹의 변화와 미래 세대 멘토로서 나아가야 할 길 - 한국주니어자유연맹 전북지부 회장 윤승현 Ⅰ.70년의 침묵을 깨고 ‘살아있는 자유’를 말하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해 온 한국자유총연맹이 창립 72주년을 앞두고 거대한 시대적 전환점 위에 섰다. 그동안 우리 연맹은 국가 안보와 자유의 파수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으나, 때로는 진영 논리의 중심에서 오해와 편견의 시선을 받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연맹은 과거의 낡은 관행과 이념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오직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쇄신 독립 선언’을 단행했다. 지난 2026년 3월 중순 선포된 ‘정치적 중립’과 ‘회계 투명성’ 강화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이제 우리가 말하는 애국심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김상욱 총재(職)가 강조했듯, 특정 진영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곳을 살피고 교육 격차를 해소하여 다음 세대에게 공정한 기회의 사다리를 놓아주는 실천
- 김태희 (경남대학교 군사학과 2학년) - 바다를 가르며 시작된 여정 지난 8월 25일부터 27일까지 한국자유총연맹 경남 주니어연맹이 주관한 ‘나라사랑 독도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해 울릉도와 독도를 다녀왔다. 독도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출발 전부터 설렘이 컸다.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그리고 역사와 주권을 상징하는 공간, 교과서와 뉴스에서만 접하던 그 이름을 실제로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벅찼다. 이번 탐방의 목적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독도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넘어, ‘우리가 이 섬을 왜 지켜야 하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고민하고 생각해 보는 여정이었다. 8월 25일, 포항에서 크루즈 여객선을 타고 울릉도로 향했다. 넓은 바다를 가르며 여객선이 움직이는 동안 바닷바람은 시원했고, 마음속 설렘 때문인지 뜨겁게 심장이 요동쳤다. 밤늦게 울릉도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섬 특유의 바다 향과 파도 소리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다음 날 독도를 보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기대감 때문에 좀처럼 잠들 수가 없었다. 파도 너머 나타난 섬, 독도 울릉도에서 독도로 향하는
이예진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2학년) 안녕하세요. 제13회 DMZ 평화둘레길 국토대장정에서 1조 조장을 맡았던 이예진입니다. 이번 국토대장정은 8월 4일부터 13일간 9박 10일동안 61명의 대원들이 함께하며, 분단국가의 현실을 체감하고 자유와 통일의 가치를 배우는 뜻깊은 여정이었습니다.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해 파주 임진각에 이르기까지 매일의 걸음마다 새로운 깨달음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첫날 진부령 고개를 오를 때의 무더위와 가파른 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끝내 이겨냈습니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웠던 순간들을 공동체의 연대와 협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고, 저는 이것이 곧 자유와 민주주의가 지닌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행군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백암산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장엄한 풍경, 화천군 토고미 마을에서 농민 분들과 함께한 농촌봉사활동, 철원 남북산림협력센터에서 직접 심은 무궁화까지...... 우리가 겪은 다양한 체험은 자유와 통일이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우리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함께하는 현실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특히 각 지역마다 자유총연맹 산하 시.군
2025년 5월 23일 금요일, 통일교육주간을 맞이해 인천 미추홀구에 위치한 인천통일관에 방문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콘텐츠와 체험형 전시가 마련된 이곳은 통일을 향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미래를 그려보게 하는 문화적 공간이었다. 인천통일관은 “왜 하필 인천에서 통일을 말하느냐‘는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갖고 있다. 인천은 지리적으로 북한과 가까운 서해 문화권이며, 남북을 잇는 중요한 관문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총 7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세션은 과거의 아픔에서부터 통일 이후의 미래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관람할 수 있었다. 가장 처음 마주한 전시는 한국전쟁과 분단이 남긴 상처를 담고 있었다. 이산가족과 실향민의 이야기를 통해 분단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떤 아픔을 남겼는지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남북이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현실을 카운트다운으로 시각화한 디오라마 전시물이 두드러지게 인상깊었다. 두 번째 전시에서는 남북 간의 대화와 만남의 역사를 연표로 정리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부터 2018년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까지, 수많은 고비와 만남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전시에서
이승만 건국정신 계승 국민대회 행사 수기 안상훈 (한국주니어자유연맹 서울시지부 회장) 2025년 3월 26일, 서울 남산 자유센터에 모인 수많은 국민과 함께 저는 대한민국의 뿌리를 다시금 확인하고, 그 위대한 뜻을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로 ‘이승만 건국정신 계승 국민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개최된 이날의 행사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인 이승만 박사의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여 열린 의미 깊은 자리였습니다. 한국자유총연맹의 주최로 열린 이번 국민운동은 단순한 기념 행사가 아니라, 이 나라가 세워진 이념과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되묻고, 이를 계승하여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기 위한 역사적 선언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주니어자유연맹 서울시지부 회장으로서 행사에서 연설을 맡아,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정신을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연단에 오르기 전까지 제 마음은 무겁고도 뜨거웠습니다. 저는 연설을 통해, 정규 교육과정 속에서 접하지 못했던 진실한 역사를 성인이 되어서야 마주하게 되었고, 특히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를 균형 있게 바라볼 기회조차 제한되어 있었다는 점을 솔직하게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세계 10위권 수준이라는 평가에 우리는 전혀 거부감이 없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기준이나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기준은 물론이고 복지수준과 같은 사회적 기준, 나아가서 과학·기술 수준과 생활양식 등으로 드러나는 문화적 기준에서도 대한민국은 세계 최상위권 국가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번영의 기초는 언제 누가 놓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이승만이 주도한 대한민국이 1948년 출발하면서부터다. 전통 국가 조선이 자주 국가임을 말로만 주장하던 대한제국 시기도 아니었고, 한반도가 일본 제국의 일부였던 식민 시기도 아니었으며, 일본과 싸워 이겼지만 소련과 합작을 통해 신탁통치를 추진했던 미군정 시기도 아니었다. <사진 설명> 왼쪽은 조선을 입헌군주국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다 투옥된 28세 청년 이승만 (1903년). 오른쪽은 그로부터 45년 후 자유민주국가 대한민국을 세워 대통령으로 취임한 73세 이승만 (1948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가의 기본 운영 원리로 내세운 이승만이 1948년 국회, 헌법, 정부를 순차적으로 만들며 대한민국이란 새 나라를 세우면서부터였다. 같은 해 12월 이승만은 새로운
안녕하십니까. 한국주니어자유연맹 충청북도지부 회장 김민서입니다. DMZ 평화둘레길 대장정을 참여할 때 솔직히 처음에는 완전한 제 의지로 참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일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은 여름철의 무더위와 장마철의 짓궂은 날씨, 대장정 이후에 남아있는 개인적인 일정들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감 등 실타래처럼 섞여있는 다양한 감정 속에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그렇게 새로운 도전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9박 10일이라는 기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함께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우려와는 다르게 너무 재미있었고 이십 대 인생의 사진첩에 잊을 수 없는 한 페이지가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완주를 통해 힘든 순간들을 이겨낸 성취감과 자신감이 인생의 자양분이 되어 미소 짓게 할 것 같습니다. 인생의 고비가 왔을 때 오늘의 완주는 또 다른 성취를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 그래서 저는 이 대장정에 참여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첫날에는 이 시간들이 언제 다 지나갈지 길게 느껴졌는데 막상 겪어보니 순식간에 지나가버렸고 9박 10일의 시간이 짧게 느껴졌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걷고 특히 우리 2조와, 학교 후배들과 함께 끝까
[출처] 사진제공: 뉴스1 “이승만 대통령이 진정한 우리나라의 건국 대통령인가?” 그동안 이 질문에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무지와 그를 둘러싼 수많은 논란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은 나를 비롯한, 20~30대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승만 대통령하면 흔히 ‘독재자’, ‘도망친 대통령’, ‘미국의 꼭두각시’, ‘남북분단의 원흉’ 등으로 욕하는 것을 들으며 자라왔다. 영화 ‘건국전쟁’은 내가 그동안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대한민국의 건국역사, 70~80년대 빠른 경제성장의 기틀을 닦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에 관해 무심했다. 미국은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을 칭송하고, 1달러 지폐에 그의 초상화를 넣으며 미국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또한, 인도에서도 인도의 아버지인 간디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며 그들의 지도자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전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그러하듯 건국 대통령, 훌륭한 지도자를 존경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해 국가 기념일은 물론이고, 기념비조차
제78주년 신의주 자유 · 반공 학생의거 기념일을 맞이하며 손용우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 한국자유총연맹 통일안보분과 위원(북한학 박사) 다가오는 11월 23일은 신의주 학생의거 제78돌을 맞는 날이다.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따른 건국 제75주년을 맞은 해라서 그 의미가 더욱 뜻깊다. 신의주 학생의거는 1957년 이승만 정부가 ‘반공학생의 날’이라는 국가기념일을 지정하였고 1968년 박정희 정부는 남산에 소재하는 한국자유총연맹 부지에 신의주학생의거기념탑을 세웠다. 그러나 1973년 국가기념일 제도 개편이라는 미명 아래 동 기념일이 폐지되면서 우리의 기억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실향민 1세대와 2세대가 중심인 신의주학생의거기념회와 몇몇 시민사회단체들 그리고 한국자유총연맹이 그 기념식의 명맥을 조촐하게 이어오고 있다. 신의주 학생의거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11월 신의주에서일어난 학생들의 반공 항쟁이다. 이 사건은 소련군의 만행과 공산당의 횡포에 맞서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기 위해 학생들이 목숨을 바쳐 싸운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는 해방 이후 세계 최초의 소련 공산 전체주의에 대한 항거운동이었다. 이 사건은 대외적으로는 1956년 헝가리 ‧
통일단체반 교육에 다녀와서 통일교육원에서 진행하는 통일단체반 교육에 참여하게 됐다. 1박 2일간 일정으로 첫날은 통일교육원에서 국제정세와 안보 북한 인권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둘째날에는 연천의 한반도통일미래센터로 이동하여 미래의 통일한국을 체험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서 통일한국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고 통일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됐다. 한반도통일미래센터는 미래 통일한국을 가상체험해 보는 훌륭한 시설이 갖춰진 곳이다. 1994년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담임선생님은 할아버지셨고, 반공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분이셨다. 사실 반공교육은 수업 과정에 없는 것이었고 선생님께서는 그냥 하고 싶은 수업을 하셨다.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우리는 장난치고 놀았지만, 조기 안보교육의 힘은 엄청났다. 운동장에 해가 반짝반짝하던 여름 초입에 ‘김일성이 죽었대’라고 말하던 9살이 아직도 생각나는 걸 보면 말이다. 어릴 적엔 학교 교육의 힘으로 통일은 꼭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도 했었던 것 같은데 세파에 치이며 ‘통일....꼭 해야 한다면 내가 없을 아주 먼 미래에 하면 안 될까’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