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정상회담,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강준영(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 대학원 중국 외교통상학부 교수)
I. 한·중 정상회담 연속 개최의 함의
작년 경주에서 거행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루어진 이재명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이 열렸었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두 달 만에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이 거행됐다. 11년 만의 한국 국빈 방문으로 상견례를 겸한 첫 대면을 통해 ‘양자 관계 복원’의 출발을 알렸고, 시 주석 초청으로 올 1월 5일 두 번째 정상회담이 열렸다.
주지하다시피 한·중 관계에는 양자 관계를 넘어서는 복합적 요소가 존재한다. 미·중 전략 갈등과 중국의 한국에 대한 주도적 입장 인식, 중국의 대외 전략 변화와 한미동맹 강화, 한미일 삼각 공조 강화 추세에 대한 우려 그리고 한·미 동맹 관계와 한·중 협력관계의 차별성, 북·중 '특수관계’ 및 북핵 문제에 대한 인식 차이, 남북관계 요소가 병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중국과 북한의 특수(特殊)관계를 제어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한·중 관계는 전체적으로 우호적이지만 영역별로는 불균형적인 관계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가 우선이고 민감한 정치·안보 이슈는 이견으로 남겨 두는 선이후난(先易後難) 사고로 발전을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지향했다. 경제·교역 분야가 ‘최대주의’를 지향했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구축을 염두에 둔 정치·군사·안보 분야는 ‘최소주의’적 결과를 보인 게 사실이다. 결국 양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문제로 갈등을 겪었고, 그 후유증이 여전하다.
이 사이 한국의 대중 정서는 급격히 악화됐고, 중국에도 혐한(嫌韓) 정서가 나타나는 등 정서적 후유증이 상당하다. 한국의 대미 경사(傾斜)와 한·미·일 3각 공조 저지에 애써왔던 중국은 이재명 정부가 ‘한·미 동맹에 기반한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강조하고 나서자 한국을 전략적으로 끌어당길 필요성이 부각 된 상황이다. 시 주석은 한국은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임을 강조해왔고, 이 대통령도 중국과의 관계 확대 발전을 강조하는 실용 외교를 강조하면서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관계 설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조기 방중을 통해 대중 관계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절박성이 있었다. 중국은 당초 3-4월 경을 방중 시기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년 11월 7일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가 바로 일본 유사’라는 발언과, 트럼프 대통령이 12월 10일 팍스 실리카(Pax Silica)라는 미국 주도의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등 첨단 기술 공급망의 새로운 글로벌 동맹을 출범시키자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조속히 자국 입장을 조속히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점에서 중국 측의 의도가 더 많이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일반적인 정상회담의 관례에 따른 공동성명이나 공동 합의문, 공동 기자회견도 없어 그 성과를 두고 평가가 분분하다. 하지만 적어도 양국 정상이 두 달 만에 다시 마주 앉을 만큼 상호 전략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가진 것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현 한국 이재명 정부와 중국은 일단 어려운 문제는 논의를 최소화하고 가능한 분야부터 협력을 강화하는 투-트랙 전략을 전개하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당초 한중관계가 교류 원칙으로 돌아간다는 측면도 있으며, 그때와는 달라진 북핵 능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가 다시 숙제로 떠오른 것이다.
Ⅱ. 한·중 정상회담에 나타난 인식 : 변화와 불변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당시의 ‘우호 관계’ 단계를 거쳐 1998년 ‘협력 동반자 관계’로, 2003년에는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다. 2008년에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발전했다. 중국은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대외 관계를 혈맹관계, 전통 우호 관계, 동반자관계, 선린 우호 관계, 우호 관계로 구분한다. 역사적인 맥락을 갖는 혈맹이나 전통적 우호관계 외에 최고 단계는 동반자관계이며, 최상위 개념에는 ‘전략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비록 ‘전략적’ 관계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내용이 형식적 수사를 초월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혈맹이나 전통적 우호 협력관계를 제외하고는 최상위급 단계가 구축된 것도 사실이다. ‘전략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양자 관계를 초월한 논의가 가능해진다.
지난 34년에 걸친 한·중 관계를 회고해 보면, 특히 북핵과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양측이 갖는 분명한 인식의 괴리들이 있다. 우선, 중국은 안보적으로 미국의 영향 하에 있는 한국적 현실을 고려해 ‘통일’보다는 ‘분단된 한반도’라는 현상 유지적 ‘안정’을 희망한다. 둘째, 북핵 문제에 대한 이견이 존재한다. 중국은 북한을 포함해 한반도 내에서의 핵 불용을 천명하면서도 북핵은 결코 제재와 압박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이는 북한 정권의 안정적 지속에 바탕을 둔 인식으로 자칫 ‘핵 있는 평화’(nuclear peace)의 위험성도 불러올 수 있다. 또 중국에게 북한과 북핵은 별개 문제다. 북한의 존재는 미국 견제와 일본 압박,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유지의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며, 관리 가능한 ‘북핵’을 통한 대미 견제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중국은 한미동맹에 부정적 시각과 함께 한·미·일을 안보 동맹으로 인식해 대중 봉쇄망의 일환으로 간주하면서 주한 미군의 대중국 역할을 주시하고 있다. 중국이 한미동맹 현대화에 우려를 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 역시 이러한 큰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실질적인 내부 회의에서 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핵 및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설명은 ‘세척의 얼음이 녹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며 한국에게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으로 표현됐다. 이러한 중국의 입장을 작년 경주 정상회담에서 충분히 인지한 한국 이재명 정부는 한·미 동맹과 한·중 협력의 차별적 구조와 미중간 간의 전략 경쟁 상황에서도 양국 간의 교류 증진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거 고려와 송(宋)이 외교적 갈등 속에서도 벽란도(碧瀾渡) 포구를 통해 교류가 계속됐었다는 벽란도 정신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의 복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야 함도 역설했다. 특히 ‘역사의 오른 편에 서길 바란다’면서 더불어 중국이 강조한 것이 바로 최근 중·일 갈등의 핵심인 ‘하나의 중국’에 대한 진전된 입장과 역사의 공통 피해자로서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대한 공동전선 전개 요구를 받았다. ’하나의 중국‘에 대해서는 원칙(原則)이라는 중국식 어젠다를 쓰지 않으면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주장을 존중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으며, 다카이치 총리가 일본의 재무장 및 군국주의화에 대항하자는 중국의 논리에는 역사적 공감대만 강조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한·일 관계도 매우 중요한데 이는 과도한 요구이며, 실제로 한국이 이런 점을 언급하면 이야말로 내정간섭에 해당한다.
한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핵 및 북한 문제에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고 싶었고, 중국은 특히 한미일 3각 공조의 가장 약한 고리로 한국을 인식하고 전략적 차원에서 중국 편을 들어주길 원하면서 구조적 현안은 피하려는 자세가 역력했다. 중국외교부의 회담 내용 발표에도 ‘한반도’나 ‘비핵화’ 관련 문구가 빠져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반면 한국은 경제협력 활성화 및 희토류를 포함한 공급망 협력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북한 ‘비핵화’나 ‘서해 불법 구조물’ 문제, 한한령 문제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결국 중국의 정치·외교적 인식이 변하지 않은 가운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부 성과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서해 불법 구조물’ 문제나 ‘상호 국민 정서’, ‘한한령’ 같은 양자적 성격이 강한 문제에 대해 개선을 희망했다. 서해 불법 구조물 문제는 양식 설비라고 주장하는 선란(深藍) 1·2호 구조물을 관리하는 관리 시설물 철거를 약속했다면서 차관급 해양 경계획정을 진행하기로 했음을 밝혔다. 중국이 양국 어업협정에 의거 공동관리하기로 한 잠정조치수역에 협의 없이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은 어업협정 위반이다. 따라서 일단 모든 시설물을 퇴거한 후, 해양경계획정을 통해 중간선을 확정하는 논의가 시작되는 게 바람직하다.
이 밖에 한한령(限韓令) 문제도 ‘문화교류의 점진적·단계적 확대’로 표현됐기 때문에 일부 진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반적 문화 분야는 점진적으로, 산업적 측면은 단계적으로 할 것이라는 중국적 표현이다. 사실 한한령은 중국의 존재 자체 부인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존재하는 엄연한 실체적 규제다. 중국은 타국 문화의 과도한 중국 유입은 ‘문화 침탈’이며, 자신들이 주창하는 ‘중화 문명공동체’의 주도적 지위 추진에 걸림돌로 간주한다. 문화정책을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中央宣傳部)가 관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한류 콘텐츠는 산업적 차원에서 중국 문화산업과 경쟁하는 주요 경쟁산업이므로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겠다는 뜻이다.
Ⅲ. 한·중 관계 재정립을 위해 - 결론에 대신하여
한·중 관계의 구조적 문제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만큼 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상회담은 한·중 관계의 새로운 출발점 정립에 분명한 기여가 예상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중국의 입장도 다시 한번 확인됐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한국 입장을 한·미 관계의 부속물이나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3각 공조의 방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농후해 ‘한·미·일 군사 동맹화’로의 발전을 심히 경계하고 있으며, 한·중 관계에 북한이라는 특수 요인의 존재도 의도적으로 간과하거나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의 이재명 정부가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하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천명했다. 적어도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의 방향성이 잡히지 않으면 안보는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국적 마지노선을 제시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안보는 미국·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 탈피를 주장하고,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승인을 얻어내자 중국 측의 우려는 계속 증폭되고 있다. 더욱이 한·미 동맹 현대화에 대한 의구심도 갖고 있으며, 일본과의 연계에도 관심이 크다.
이 점에서 한국 정부가 분명히 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우선, 한국 정부는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중 관계의 완전한 복원’이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복원’이 사드 사태 이전으로는 복귀해야 한다는 것인지, 수교 당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지 그 정도가 모호하다. 실용적 차원에서 ‘위기 속에서도 교류 지속’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가 되지만,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공감 형성 없이 ‘완전한 복원’을 말하기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복원보다는 재조정, 재정립이 적절하다.
또한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에 대한 중국의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중국이 ‘핵 비확산’을 강조하면서 한국을 압박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불법 핵 개발국인 북한의 지속적 핵 개발과 8천700톤급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는 침묵하면서 핵확산 방지조약(NPT)의 통제를 받는 한국의 원자력 잠수함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삼척(三尺)의 얼음이 하루아침에 녹기 어렵다‘며 인내심 강조와 함께 언급한 ‘창의적 방안’ 마련에 대비가 필요하다.
작금의 세계는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지속된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주창자였던 미국에 의해 철저하게 붕괴되는 시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다자 질서도 자유무역 질서도 와해 직전이다. 중국은 이틈을 노리면서 새로운 질서의 건설자가 되고자 한다. 이 상황에서 한·중 관계는 미·중 갈등이나 북핵 위협이 돌출되면 계속 외교적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존재하는 선천적 취약성을 갖고 있다.
이 점에서 새로운 한·중 관계 정립을 위해서는 보다 당당한 자세로 국익 중심 실용 외교 전개를 위한 실무 액션 플랜 구축에 정교한 전략적 논리가 필요하다. 당연히 새로운 협력 분야 개발에 노력하면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상호 공급망 안정화 방안 구축이나, 상호 국민감정 순화에 대한 구체적 플랜을 제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당연히 전략 대화도 계속 유지돼야 한다. 대화가 사라지면 억측이 난무하게 되고 이는 오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어렵게 방향성을 잡은 만큼 상호 간 ‘합리적 기대와 우려’가 교환되는 상시적 소통 기제 마련이 시급하다.








